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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태종대유원지 소개

Taejongdae Resort Park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는 곳, 환상적인 해안절경 / '명승' 태종대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해안절경 / '명승'태종대 사진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해안을 따라 약 9.1㎞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대유원지는 1,632,809㎡ 면적에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송을 비롯한 120여종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해안에는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 그리고 탁 트인 대한해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로 옛부터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옛부터 시민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 때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되었던 관계로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되어 오다가 지난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고, 2005년 11월 1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12월 6일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지질공원(Geopark)이란?

지질공원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3대 자연환경 보전 제도 [세계유산(World Heritage), 생물권보존지역(Biosphere Reserve), 지질공원(Geopark)] 중 하나로 지형·지질 유산과 함 께 생태·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보전함과 동시에 연구·교육 등에 활용하고, 이를 대상으로 지질관광(지오투어리즘, Geotourism: 천연의 지형·지질 유산을 활용한 관광)을 운 영함으로써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태종대는 백악기말에 호수에서 쌓인 퇴적층이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만들어진 파식대지, 해식애, 해안동굴 등의 암벽해안으로 유명한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경관지입니다.

태종대 명칭의 내력

진재(眞宰) 김윤겸 그림 태종대
태종대는...
지금의 등대에서 남쪽으로 돌아 절벽 비탈로로 100미터쯤 가면, 해안가쪽에 암석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낮아진 반반한 넓은 자리가 있는데 이를 태종대라고 합니다.


태종대에서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습니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옛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 때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되었던 관계로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됐다. 그러다가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태종대 순환도로는 총연장 4.3㎞로 1970년부터 개설하기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하였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 태종대유원지 조성계획에 의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2005년 11월 1일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 17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11월 27일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되었다.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됩니다. 또한, 태종이 일본을 토벌하기 위해서 태종대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검증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태종대가 고대 사회부터 지역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태종대(太宗臺)'라는 이름에 관한 내력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래부지』(1740년)에 의하면, 신라(新羅)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와 이곳 이름을 '태종대'라고 붙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동래(東萊)의 절영도(絶影島)에 태종대(太宗臺)가 있는데, 속전(俗傳)하기를 '신라의 태종(太宗)이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할 때 주필(임금이 거둥하는 중간에 어가를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던 일) 하였던 곳' 이라 합니다.. 신라는 조그마한 구석진 땅이로되, 육지로는 능히 고구려와 백제에 대적하고, 바다로는 왜국을 정벌하였으니, 그 병력의 웅대함이 삼국을 통일할 만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후세에 해동의 온 땅덩어리가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곤욕을 당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위정자(爲政者)들은 의당 그 방어책을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안정복은 신라의 태종이 대마도를 칠 때 태종대에서 머물렀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의 태종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이 그 치세 말년인 1419년에 큰 가뭄이 들자, 그 해 5월에 태종대를 찾아 비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로부터 음력 5월 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르게 됐고, 가뭄을 만나면 비 오기를 이곳에서 빈다고 했습니다.. 『동래부지』에서 말한 대로 가뭄이 닥치면 태종대에서 비 내리기를 빌었는데, 동래 지방에 가뭄이 닥치면 동래부사는 태종대에서 기우제를 올렸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사묘조」에 절영도 신사에 관한 다음의 기록이 보입니다.. "돌로 단을 만들었으며 옛날에는 비를 빌어 징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시기가 중종 25년(1530년)이니, 그 책이 편찬되기 이전까지 영도 태종대에 신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동래부읍지』 「고적조」에 태종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동래부 남쪽 30리의 절영도 동쪽에 있습니다. 바닷물이 둘레를 돌고 서쪽으로 한 석교가 있어 간신히 사람이 지날 수 있습니다."
신라의 태종이 대마도를 칠 때 태종대에서 머물렀다거나,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아 포장과녁을 맞힌 곳이라 하여 태종대라 하게 되었다거나, 조선 태종이 치세 말년에 큰 가뭄이 들자 비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는 모두 태종대가 국가 안녕을 비는 기원의 성소였음을 말해줍니다..

태종대는 영도뿐만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명소가 함께 있는 천혜의 관광지입니다.. 이곳은 그야말로 난대에서 온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식생을 지닌 울창한 숲과 해식절벽, 반딧불이, 공룡발자국, 보라매 서식지 등 풍부한 자연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명승지입니다.. 태종대는 이처럼 천혜의 자연생태자원일 뿐만 아니라, 신라의 태종무열왕과 조선의 태종이 관계된 설화를 지니고 있는 공간으로 역사문화의 스토리가 복합되어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