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옥련 朴玉連 ,1914.12.12~2004.11.21. 전라남도 광주 , 애족장 1990
□ 장경례 張慶禮 ,1913.04.06~1997.12.01. 전라남도 광주 , 애족장 1990
□ 박현숙 朴賢淑 ,1914.03.28~1981.01.23. 전라남도 광주 , 애족장 1990
□ 장매성 張梅性 ,1911.06.22~1993.12.14. 전라남도 광주 , 애족장 1990
○ 주요공적
▷ 1928년 11월 항일학생결사 소녀회 조직
▷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 때 부상학생 치료 및 시위 지원
○ 상세내용
▷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 이듬해 봄까지 확산되는 과정에서 여학생들이 보여준 활약은 대단했지만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광주학생운동의 전국적 확산의 계기가 된 1930년 1월 15일의 서울 시위는 여학생의 연합시위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어떤 교과서도 이를 제대로 언급한 바 없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여학생 비밀결사인 독서회, 즉 소녀회가 활약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
▷ 1919년 3.1운동에서 학생이 처음으로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바, 3.1운동에서의 여학생의 활약은 눈부셨다.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학생운동인 광주학생운동에서도 소녀회로 대표되는 여학생의 항일투쟁이 당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소녀회의 항일투쟁은 3.1운동으로부터 광주학생운동에 이르기까지 동맹휴학, 비밀결사, 학생시위로 표출된 학생운동의 흐름 속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또한, 1920년대 광주는 서울과 함께 학생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으로 그 정점에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 소녀회는 1928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장매성의 주도로 결성된 비밀결사 독서회였다. 이듬해인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장매성, 장경례, 박현숙, 박옥련 등 11명의 소녀회 회원들은 가두시위에 나섰고 부상당한 학생을 치료하고 식수를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30년 1월 소녀회 조직이 발각되면서 그해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장매성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고, 장경례, 박현숙, 박옥련 등 10명은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e-gonghun.mpva.go.kr/user/IndepCrusaderDetail.do?goTocode=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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